호주/호주 이야기

호주 워킹홀리데이 (워홀 후기) :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피해의식

Roy 2015. 3. 3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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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이미지 캡쳐



 호주는 다른 이민국가들 보다 특히 '인종차별'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도 얼마전에 정말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워홀)을 온 이후로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해 보고 알아볼 정도로 호주의 많은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기분 나쁜 일을 당했던 그날도, '호주에서 살게 된다면 내 삶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여유롭게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휘파람 소리, 뒤를 돌아보니 길건너 편에서 한 백인 남자가 아무런 이유없이 나에게 가운데 손가락 욕을 시전하면서 동양인을 비하하는 듯한 말을 했다. 해외생활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참 당황스러워 그냥 애써 무시하고 내 갈길을 다시 가는데, 또 한번 들리는 휘파람 소리. 기분 정말 더럽다는 표정으로 획 돌아보니, 다시한번 가운데 손가락을 펼쳐든다. 


 이쯤되니 많이 무섭기는 했지만 화가 정말 많이 났다. 어차피 총도 없는 나라고, '적(?)도 한명 뿐이다' 라는 생각에 '뭐? 뭐? 어쩌라고?' 이러면서 그쪽으로 길을 건널 것처럼 쏘아 붙였더니, 희롱적인 말투로 희희덕 거리며 '시간있냐'고 물어보면서도 기세가 조금 꺽였다. 진짜 너무 화가 났는데, 많이 무섭기도 하고 일이 커지면 그냥 나만 손해일 것 같아서 한번 더 째려보고 그냥 갈길을 갔다. 나도 같이 쏘아 붙여서 그랬는지, 더이상 휘파람을 불거나 뭐라하진 않았는데 기분은 정말 상당히 더러웠다.


 물리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건 아니지만 그냥 가만히 길가다 봉변당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호주에서 계속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확 사라졌다.



 사실 한국에서도 그렇고, 어디에나 인종차별은 있다. 그런데 이 인종차별이란게 참 무서운게 한번 인종차별을 이렇게 굴욕적으로 당하고나니, 자꾸 피해의식이 생긴다. 상대방은 인종차별이 아닐건데, 나 스스로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저러는 걸꺼야'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된다.


 정말 저 손가락 욕 먹고 한동안은 길가다가 누가 나보고 웃으면, 그냥 눈 마주쳐서 미소 짓는게 아니라, 내가 동양인이라 비웃는 느낌이 들어서 한없이 작아지고, 기분이 나빴다.



 그러다가 대부분의 것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내 피해의식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내가 신호등에서 무슨 정신이었는지, 빨간불인데 파란불인줄 알고 한발을 도로로 내딛었다. 좌회전을 기다리고 있던 차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백인 남자가 그런 날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약간 비웃으면서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는데, 난 처음엔 그것도 내가 동양인이라 저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운전할 때를 생각해 보니, 무단횡당하거나 갑자기 길을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차안에서 혼자 욕도 하고 그랬다. 그건 그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이 외국인이냐 한국인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 이 생각이 들고나니, 인종차별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이 줄었다. 물론, 지금도 그 손가락 욕의 여파가 남아 있어서 약간 움츠려든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많이 회복되었다.



 결론은 정말 인종차별은 나쁘다. 가해자는 정말 재미로 한번 그랬을지 몰라도, 피해자는 그게 뇌리에 깊게 박혀서, 다른 일을 할때도 '이게 인종차별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된다. 


 내가 호주에서 인종차별을 실질적으로 받은건 이 손가락 욕 사건 한번뿐이지만, 그 여파는 그 크기와 상관없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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